만성적인 서울교통공사의 적자에 대하여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그 적자의 주범으로 노인의 지하철 무임 수송이 꼽히면서 표적이 되곤 한다. 지난 7월의 뉴스에서도 과거 10년 치 수치를 거론하면서 무임 수송 손실의 국고 부담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서울교통공사 당기순손실의 30%(어떤 매체에서는 66.7%~69.7%)가 무임 수송의 손실이라는 기사가 또 한 번 표시만 ‘우대권’이라는 지하철 승차권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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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식탁에 자주 올라 노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로우대권. ⓒ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2017년 9월 2일 우이신설경전철이 개통되자마자 노인들 무임승차로 경전철 적자가 예상된다면서 6일간의 승차 데이터를 놓고 왈가왈부 논란이 있었다. 그 주된 이야기는 노인 무임승차 비율이 평일 34.4%, 주말 38.3%라면서 하루 평균 이용객도 5만여 명으로 예상의 절반 수준이라며 적자로 운영난을 우려하는 보도를 SBS 뉴스를 통하여 전했다. 어떻게 한 해 운영도 해보지 않고 개통 일주일 만에 무임승차 노인들이 적자운영의 주범이 되는지 궁금하였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받는 지하철 무료 이용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노인 복지 정책 중 하나이다. 노인들의 최소한의 이동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1980년부터 만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요금의 50%를 할인해주다가 1984년부터는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100% 요금을 면제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만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요금제가 지하철 적자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민간사업자 ‘네오트랜스’는 신분당선의 노인 무료요금제를 폐지하겠다고 국토교통부에 운임변경을 신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게 지하철 운영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을 노인들의 무임승차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에 그 실체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에도 지하철 역사에는 지하철노조까지 힘을 더하며 노인 무료승차로 지하철이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의 스티커와 포스터가 줄을 이어 지하철을 타려는 노인들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우리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이용하고 있는 지하철은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를 키우고 가르치며 고난스러운 생활을 하면서도 지금 우리를 위하여 탄광의 막장과 같은 지하를 파고들면서 그 뜨거웠던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하철을 건설하신 분들 덕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고정소득이 끊어지고 몸이 성치 않아 휘청거리게 된 분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예의로 1,250원짜리 승차권 한 장을 건네주는 것에 인색하다는 것은 아쉬움에 앞서서 우리의 불경함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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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가 안락하게 누리는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우리가 이 지하철 적자의 주범이라고 몰고 있는 그분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 서울교통공사, 내 손안에 서울

 

지하철의 적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한번 지하철 만성적자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그 실질적 개선책을 규명하는 신문 또는 여타 보도를 본 기억이 없다. 적자 원인을 규명하는 데 쓰이는 아주 간편한 공식이 바로 노인의 무임승차가 그 원인이라는 깃발 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공사의 적자는 다른 부분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만성적자의 원인이라고 치자. 그래서 지하철공사에서는 노인들의 탑승을 거절한다. 해서 노인들은 이 가혹한 처사에 지하철 이용을 못 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즘 적자가 흑자로 반전될 것인가 묻고 싶다. 적어도 이러한 조건이라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셈하는 손실액은 다만 지하철 이용 승객 중에 노인이 이용했다는 숫자로만 해석될 것이다. 나의 셈법으로는 지하철의 적자는 여전히 면할 길이 없다. 다만 만성적자의 원인을 감출 요인만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같은 처방의 다른 표현으로 어르신들이 지하철 무료요금 폐지에 반발하여 지하철 자체를 이용하지 않았다 치자. 과연 지하철공사는 적자에서 벗어나고 지하철은 흑자로 반전될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마찬가지로 적자 폭만 극소하게 줄어들 개연성만 남을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지하철의 적자를 노인 무료승차로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러한 반증이 코로나로 노인승차율이 급격히 감소한 2020, 2021, 2022년 지하철은 흑자로 전환이 되었다던가 흑자로 되는 결정적 상황변화가 이루어졌다는 뉴스가 있어야 함에도 그런 보도는 아직 없다. 물론 영원히 그런 결과는 나타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하철은 말이 끄는 것도 아니요. 노새가 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일 뿐이다. 승객이 한 명만 승차하였다 해도 지하철은 제시간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 그 지하철 안에 우리나라를 이만큼 굳건하게 세워 일으킨 그 시절의 청년들이 이제 걷기도 불편하고 소득도 없는 노인이 되어서 동승을 한다고 해서 지하철의 전기료가 두 배로 늘어날까? 전동차 감가상각을 2배로 계상해야 할까? 지하철 구조물과 승강장 계단이 더 많이 닳아서 내일 출입구를 틀어막아야 할지 어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인 고객의 승차를 막음으로써 적자가 흑자로 반전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지하철 적자의 지속적 증가 원인을 늘어가는 노인들의 증가에 따른 이유라고 보도한다. 그렇게 해석될 이유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그런 해석의 요인도 희석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 활동 사이클은 궁극적으로 노인 세대로 진입한다 해서 무한정 그 숫자를 더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65+ 세대가 지하철을 타고 외부 활동을 제법 할 수 있는 시기는 한 십여 년 된다. 아무리 지하철을 거저 타라고 해도 아니 돈을 얹어 주면서 타시라고 해도 그 시기가 지나면 지하철 속에서 그런 어르신을 점점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에 갇히거나 요양병원 침상에 등을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시기도 바로 노인들 우리 65+ 세대이다. 그러니 그러한 혜택이라고 해도 십여 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라 하면, 그만큼 사회복지 비용의 감소가 되기에 국가적으로는 더 큰 이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 시기를 이용하는 노인들에게 지하철 적자운영의 죄를 씌우는 것은 우리에게 지하철을 만들어 이용하게 하신 노인분들에 대한 오만이다.

 

우리 사회복지정책은 항목에 지하철 무료승차를 크나큰 복지라고 자랑하면서 그분들이 느끼시기에 거북스러운 표현을 쏟아내곤 하는데 이때 어르신들 마음의 상처를 헤아려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더하여 무임승차를 축소·변경하거나 폐지할 때 재앙처럼 우리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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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부모님들을 지하철을 통한 운동을 하시도록 도울 것인지, 아니면 요양원에 모셔 쓸쓸한 노후를 맞이하게 할 것인지. ⓒ 유토이미지

 

지금 이 작은 비용은 노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연장 또는 활력화하는 데 효과적인 의료적 예방치유법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느끼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어르신들을 급기야 집안에 가두어 노인 요양에 따른 비용을 지출한다고 치면 지금 1,250원이 월 1,250,000원 요양원의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하여 노인들이 지하철만 타고 갔다가 그냥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분들이 어디엔가 가서 그곳에서 자장면 한 끼, 음료수 한 병을 먹어도 이는 사회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금융·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렇게 활성화되는 경제적 기능만으로도 지하철 적자운영에 대한 족쇄로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를 짚고 나설 일을 아니라 본다.

 

건강에는 부자도 빈자도 차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하철 요금 1,250원의 커다란 힘이 노인들의 다리에서 시작되고 있다. 어느 어르신은 지하철로 인해 하루 만 보의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어 이보다 더 훌륭한 체육관이 없다고도 한다. 이는 무료 지하철 승차권의 효과이기도 하다.

 

다만, 한가지 어르신들의 승차로 출퇴근 시간의 혼잡도가 가중되는 면은 있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어르신들의 불가피한 이동도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이동하실 것이다. 젊은이들도 견디기 힘든 그 혼잡한 시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어르신들에게 이상한 색깔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요금을 지불하고 승차한 노인들이 출·퇴근 시 지하철 요금 지불의 정당한 권리로 안락한 승차를 요구한다면 지금처럼 혼잡한 지하철 객차의 증설이나 열차 운행 간격을 줄여 고객으로의 욕구에 부응해야 할 비용 지불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1,250원×2×30=75,000원’으로 65+세대 자존심을 훼손치 않기를 바란다. 지금도 가난의 시절에 눈곱처럼 달라붙은 습관 때문에 나를 위해 쓸 줄 모르는 분들. 이 나이 되어 보니 먹고 싶은 음식도 군것질도 많은 것 보니, 그 시절 지금의 노인들도 당신이 먹고자 하는 마음 접어가면서 자식들에게 기성회비 납부일을 늦추는 일이 있어도 매일매일 교통 요금은 손에 쥐어 학교에 보내시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떨지 싶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지금 1,250원 승차권을 건네주면서 너무도 가혹스러운 이야기가 뉴스로 나올 때 헛기침을 뱉어야만 하는 심정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이 적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기적과 같은 사회적 효익과 이로 절감되는 사회복지 비용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직접적 효과뿐 아니라 부수적인 효과로 사회적으로 예절과 미풍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라는 그림이 그려지면 좋을 것 같다. ‘지하철 노인들의 무임승차는 적자 운용의 원인이다’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는 이제 다시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 말해야 할 화두라면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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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갈등까지 부추기는 지하철 무임승차문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유토이미지

 

이로 인하여 학습된 우리의 아이들과 지금 무임승차 폐지를 부르짖는 젊은이들이 70세가 되었을 때 80세부터 무임 승차하자는 주장을 들을 것이고, 그렇게 부르짖던 그들이 80이 되었을 때는 100세부터 무임승차를 요구받을 것이다. 이 사회에 지하철 무임승차가 100세부터라는 제도를 못 만들 리 없을 것이다. 학습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지하철의 수익을 높이기 위한 가장 큰 요인은 이용 승객의 확보가 요체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더 늘리기는 요원하다. 출생률의 저하를 보아도 말이다. 기존 고객인 노인들을 승객화하여 적자를 보전하려는 의도이지만, 만일 유료화 한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던 노인을 다 유료 승객으로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무료이기에 건강을 위하여 이용하던 승객들도 유료가 된다면 불편한 지하철보다는 이용에 편리한 버스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하철 무임 정책이 변화한다면 정 없는 사회로의 세계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자녀들에게도 학습이 될 것이니 세계에서 가장 비정한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그나마 지하철로 건강을 유지하던 노인들이 건강을 잃게 되면 우리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의 아버지가 노년의 지하철 요금을 준비한다고 자녀에게 교통 요금 건네기에 인색하다면 자녀들은 그 마음의 허탈함이 얼마나 클까? 인정도 배려도 없는 사회가 눈에 보이면 절망이다.

 

지금의 노인은 우리의 아버지고, 우리의 형님이고, 우리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시다.

 

 

50+시민기자단 민명식 기자 (saeu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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